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도 지났고 삼복더위의 끝인 말복(末伏)도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더위는 한창이다. 더워도 그냥 더운 것이 아니라, 찜통이나 가마솥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말 그대로의 폭염(暴炎)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라 거리응원 한 번 나서볼 만도 한데, 연일 32~36℃를 오르내리는 통에 문 밖으로 나서기조차 무섭다. 하지만 이미 하나둘씩 드러나는 이상 징후들은 더위로 인해 우리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알린다.
더위 먹고 여름 타고, 한방에서는 주하병(注夏病)으로 봐
특히 올 여름처럼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면서 짜증이 나고,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다. 더위 탓인지 한 번의 바깥출입만으로도 쉽게 지치고 입맛도 없다. 매사에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는 일도 많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대개 사람들은 ‘더위 먹었다’, ‘여름 탄다’고 하며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심지어 “더위 먹은 게 병이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에 대해 주하병(注夏病)이라 한다. 쉽게 풀어 말하면 더윗병이라고 할 수 있다.
무더위 속 원기가 부족하고 음기가 허하면 주하병에 걸리기 쉽다. 여름에는 땀, 소변, 피부를 통한 수분 증발이 많아지기 때문에 자칫 체내의 진액이 부족하기 쉬운 데다 과도한 열량 소모로 인해 기력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체온 조절 능력이 미숙한데다, 기운을 만들어내는 소화기가 어른들보다 약하고, 땀으로 수분 배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기운이 딸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이때 입맛을 잃어 밥을 먹지 않는다거나 더위를 핑계 삼아 빙과류, 청량음료 등 찬 것만 찾다가는 오히려 아이 건강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더위에 적응하고 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냉방이 잘 된 곳에서, 시원한 음식을 즐긴다고 주하병을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흔히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찬 음료와 선풍기, 에어컨 등의 냉방 시설. 하지만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나 청량음료는 약해진 소화 기관을 자극하고, 너무 많이 먹게 되면 오히려 배앓이로 인해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 찬 것을 절제하기 어려운 어린 아이라면 찬 것 먹은 후 따뜻한 물 반 잔 정도 먹이는 습관을 들인다. 또 땀이 너무 많이 난다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 놓는 것은 적당한 땀을 통해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을 막는다. 주하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트레스나 화 등 몸에서 열을 내는 행동을 하지 말고, 찬 음식이 아닌 제철 과일과 채소로 원기를 회복하고 적당히 땀을 흘리는 것이 좋다. 여름에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하는 것도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방법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사계절 중 건강을 지키기 가장 힘든 계절이 여름이라고 나와 있다. 그만큼 여름은 어느 때보다 음식이나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주하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다음 계절의 건강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는데, 겨울의 병을 여름에 다스린다는 동병하치(冬病夏治)의 개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분 보충과 기력 보강에 좋은 먹을거리 선택
주하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싶으면 평소에 더위를 식히고 진액을 생성하는 데 효과가 있는 참외, 수박 등의 여름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수박은 열을 풀어주는 동시에, 쌓인 피로를 회복하게 하며, 이뇨 작용이 있다. 그리고 물 대신 수시로 마시면 좋은 것은 바로 오미자차. 오미자는 땀이 나가는 것을 조절하고, 기운을 나게 하며 갈증해소에 도움이 된다. 오미자 12g에 뜨거운 물 150ml에 5분 정도 우려낸 다음 식혀서 마시면 된다. 신맛을 부담스러워 하는 돌 이후 아이에게는 꿀을 넣어 먹여도 된다.
더위 타는 것이 지나치게 심한 경우에는 한의학 처방을 받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보통은 소화기 기능이 떨어지고 감기 증상이 있는 경우 이향산을, 기운이 허해지고 진액이 말라가면 생맥산을 처방한다. 이향산은 위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때문에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등 찬 음식을 많이 먹어 배앓이,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 도움이 된다. 반면 생맥산은 인삼, 맥문동, 오미자의 약재로 구성된 간단한 처방으로, 진액을 보충해 기력을 북돋우는 역할을 한다.